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대표하는 책 중 하나 ‘불안’은 일상의 언어를 통해 철학적 분석과 심오한 심리를 표현한 책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파고들고 저마다의 고민에 울림을 전합니다. 불안의 자세한 줄거리와 명구절을 준비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줄거리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불안의 원인은 5가지로 꼽니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이 모든 것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 사랑결핍 :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갖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과 상관없이 사회의 사랑은 불안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 속물근성 : 내만보단 외적인 가치를 꼽는 사람들을 말하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기도 합니다. 이는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물질주의 사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기대 : 계급주의 사회에서 노예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기대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남과 나를 비교할 수 있으며 노력하면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되며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되게 만듭니다.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는 곧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 능력주의 : 과거에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위로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먹여 살리며 천구극 부를 쌓아서 가는 곳이 아니고 부자들은 힘없는 가난한 자를 이용해 배를 채운다고 하죠. 하지만 19세기 사회진화론에 의해 판세가 바뀌고 맙니다. 부자는 그들이 가난한 자를 먹여 살리고 능력 있는 자가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존 계급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 사회로 바뀌며 가난한 사람이 게으른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 불확실성 : 불안의 이유는 때 때로 발휘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재능 때문일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나 불행, 나를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고용주. 고용주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해 사라지 수 있는 지위. 이 모든 것들을 무너트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확실히 모장될 수 없는 세상이기에 부랑ㄴ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해법도 5가지로 나누었죠.
- 철학 : 남은 나에 대해 모릅니다. 그러니 남이 함부로 내린 판단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면이 존재하는 나의 가치를 세워라고 합니다.
- 예술 : 연극, 영화, 소설 등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라고 합니다. 세상에 쉬운 삶은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유명한 사람도 그들만의 대가를 치르고 삽니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내 삶에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 정치 :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데올로기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마다, 시대마다 달라지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니 내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 기독교 : 하느님이 보기에 인간은 모두 같다고 합니다. 천국에 가는 건 학력순이나 재산순이 아닙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 보헤미안 :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와 달리 그들만의 가치를 따르며 살아갑니다. 그들처럼 나도 나만의 삶을 살면 불안을 떨칠 수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명구절
-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 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뛰어난 작가 역시 평범한 삼류작가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접근한 작가로 들로부터 질투를 더 받는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 자연은 나에게 자난 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우리는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 소크라테스는 남들이 우리를 보는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욕은 근거가 있든 없든 우리에게 수치를 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상자를 하나 떠올리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식은 모두 이 상자에 먼저 들어가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참이면 더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만일 거짓이면,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버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철학자들은 이 상자를 ‘이성’이라고 불렀다.
-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는 노력을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